유럽기행①프랑스 파리 첫 눈, 첫 인상, 첫 작품, 첫 키스.... 모든 "첫" 경험이 다 그렇듯 여행도 마찬가지다. 첫 유럽 여행을 떠났던 스물 몇 해 전의 기억은 아직도 두근거림없이 꺼내볼 수 없는 설레고 벅찬 첫 경험이다. 요즘이야 유럽도 이웃집 드나들듯 오가고, 파리 뒷골목에 숨어 있는 작은 맛집까지도 찾아가는 이들이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유럽이 처음인 여행자들은 우선적으로 돌아보게 되는 곳이 각국의 대표적인 명소들이다. 더욱이 아이를 동반한 여행이라면.
영화 <레미제라블>에 한껏 감동했기 때문일까, 아이는 프랑스 파리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Do you here the people sing?"을 흥얼거리며 빠른 걸음을 옮기던 아이는 정작 콩코르드광장의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에 대해선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눈 앞에 우뚝 버티고 선 에펠탑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ㅠㅠ. 역시 아이들이란.
파리를 대표하는 명소 중 첫손 꼽히는 곳은, 그래서 에펠탑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누군가는 콩코르드광장을, 어떤 이는 루브르미술관을, 또 다른 이는 베르사유궁전이며 노트르담 등등을 말하기도 하지만 에펠탑은 이렇듯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지에 자리잡은 파리는 가장 높은 곳이, 운하를 조성할 때 파낸 흙을 쌓아 만들었다는 몽마르트르언덕일 정도로 가지런한 높이의 석조건물들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개인주택까지 르네상스-고전주의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어 도시 전체가 고풍스러우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준다.
그래서 에펠탑이 처음 들어설 때는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의 상징물로 세워진 에펠탑은 높이 320.75m의 거대한 철탑이었던 까닭에 고풍스런 도시와 사뭇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지식인과 예술인들은 에펠탑을 "비극적인 가로등", "철사다리로 만든 깡마른 피라미드" 등이라 조롱하며 당장 철거해야 한다고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에펠탑만이 아니다. 파리의 도시미학에 대한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프랑스인들은 새 건축물이 들어서는 걸 아주 싫어한다. 1910년 몽마르트언덕 위에 세워진 사크레 쾨르 성당이 공사중일 때도 파리의 경관을 손상시키는 중세건축의 모조품이라 비판했고,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세운 루브르박물관 정원의 유리 피라미드도 거세게 항의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새로운 건축물들이 오히려 파리의 상징물로 빛을 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인들이 안목이 없어서일까. 절대 아니다. 그토록 오랜 심의과정을 겪어 세우므로 파리의 새 건물들은 언제나 옛것에 빛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도시 전체를 예술품처럼 아끼고 가꾸는 그들의 안목과 열정이 예술의 도시, 오늘의 파리를 있게 한다.
에펠탑을 처음 보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커도 커도 이렇게 클 줄 몰랐다"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 달리 실물은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여서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진다. 근처에서는 카메라에 다 담기도 어렵다.
에펠탑 전경을 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샤이요궁이다. 그림엽서의 사진들이나 에펠탑을 배경으로 하는 대부분의 촬영지가 이 곳이다. 샤이요궁에서 에펠탑으로 가려면 이에나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센강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우여곡절이 많다. 1806년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이 건설을 명했으나 그의 실각으로 건축이 늦춰졌고, 완공 후에도 여러 차례 파괴되는 등 고난을 겪어 "인고의 다리"라고도 불린다.
모두 3개 층으로 만들어진 에펠탑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면 맑은 날에는 64km 이상 떨어진 곳까지 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의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3층 전망대에서는 파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품있게 자리잡은 나지막한 건물들과, 센강에 떠 있는 한가로운 유람선,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파리 풍광을 지켜보노라면 더할 수 없는 이국적인 정서에 절로 "오, 파리!"를 외치게 된다.
에펠탑 아래 위치한 샹 드 마르스공원 왼쪽에는 나폴레옹의 유해가 있는 앵발리드, 그 근처에는 로댕미술관이 있다. "마르스(전쟁의 신)의 들판", "3월의 들판"이라는 뜻의 샹 드 마르스공원은 파리지앵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