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베르사유에서 인생을 '사유'하다

입력 2013년02월1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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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기행 ③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궁



 온갖 찬사를 미리 접해서였을까, 파리 남서쪽에 자리한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히야, 저 번쩍이는 담장 좀 봐라. 그야말로 금테 둘렀네! 담장이 저 정돈데 안은 얼마나 화려할까! 안 그래?" 호들갑스런 감탄으로 바람을 잡아보았건만 녀석은 여전히 패딩주머니에 두 손을 깊이 찔러 넣은 채 어깨만 한번 "들썩" 해보인다. "뭥미", 대충 뭐 이런 반응이다. 두고 보라지, 네가 언제까지 그렇게 소 닭 보 듯 할까.


 태양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1643~1715)의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베르사유 궁전은 화려함과 호사스러움의 진수를 보여준다. 원래 루이13세가 지은 사냥용 별장이었으나, 루이14세는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듯 이곳에 더없이 광대하고, 호화롭고, 아름다운 궁전을 꾸미도록 명했다. 거기에는 당시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재무장관 니콜라 푸케를 제압하기 위함도 있었다. 예술적 안목이 빼어났던 니콜라 푸케는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총 동원해 그의 성(보 르 비콩트)을 건축했고, 그곳을 사교의 중심지로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무장관의 성이 그 정도라면 국왕은 성은 더 훌륭해야 했다. 이에 보 르 비콩트를 만들어낸 건축가와 화가, 조경사 등은 그보다 더 훌륭한 성을 만들라는 명령에 머리를 맞댔고, 그 결과 베르사유 궁전을 탄생시켰다. 파리 근교의 작은 시골 마을에 불과했던 베르사유는 이후 전 유럽을 압도하는 정치, 문화, 사교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소 닭 보듯 시큰둥하던 녀석의 눈이 소 눈알처럼 휘둥그레졌다. 베르사유궁 첫 관람 코스인 왕실예배당에 들어서면서이다. 대리석과 금박장식이 어우러진 예배당은 엄숙하면서도 화려함이 잘 조화된 공간으로 역동적이고 장식적인 바로크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근데, 바로크 건축양식이란 게 뭐죠?"

 "?"

 
어찌할거나 대한민국의 이 중딩을. 감상은 없고 이론에만 길들여진 4지선다형 키즈(kids)에게 바로 저것이라고, 니 눈앞에 펼쳐진 바로 저것이 바로크 양식이라고 외쳐야 하는 걸까.

 
<베르사유의 장미>에 열광했던 세대라면 왕실예배당에서 거행되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식도 능히 상상해보리라. 선병질적인 아름다움을 가졌던 만화 속 주인공의 모습이 어디선가 금방이라도 사뿐사뿐 나타날 것만 같지만 초상화로 만나는 모습은 퍼뜩 현실을 깨닫게 한다.

 
궁전 안에는 헤라클레스 방, 비너스 방, 루이 16세의 결혼 축하를 위해 만든 오페라의 방 등 여러 이름의 방이 있는데 그중 압권은 거울의 방이다. 거울의 방은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회랑으로, 루이14세의 통치기간을 나타내는 17개의 창문과 그 맞은편 벽에 창문과 똑같은 17개의 거울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화려한 장식과 샹들리에, 정교한 조각들에도 감탄하지만 천정을 가득 메운 정교한 천정화를 보는 것도 큰일이다.



 
궁정의식을 치르거나 외국특사를 맞을 때 사용되었던 거울의 방은 그들에게 과시하고 싶었던 루이14세의 절대적인 힘을 담고 있다. 화려한 내부 장식을 한 "전쟁의 방"에는 승리한 루이 14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남쪽 끝에 있는 평화의 방에도 유럽 평화를 확립한 루이 14세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화려함과 눈부심을 뒤로 하고 건물을 나오면 유명한 베르사유 정원과 마주하게 된다. 30만평에 이르는 드넓은 정원은 인공적인 아름다움의 결정체임을 보여준다. 자로 잰 듯 반듯하고, 컴퍼스로 그린 듯 둥근 정원에 연못과 분수, 조각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이걸 다 보게요?"

 
아이는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정원을 거니는 관광객은 드물었다. 드넓은 정원을 순회하는 미니열차도 있었지만 그 또한 이용하는 이가 많지 않다. 아이의 표정으로 보건대 어서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어하는 눈치다.

 "
멋지다기보단....왠지 멀미가 나요. 궁전도, 정원도....제가 왕이라면, 전 절대 이렇게 살지 않을 거예요"



 절대 그렇게 살 일은 없을 터인데도 녀석의 표정은 진지하다 못해 심각하다. 화려하고 웅장한 궁에서 녀석이 보고 느낀 것이 무엇이길래.... 파리시내로 돌아와 판테온을 찾았을 때서야 녀석의 표정은 비로소 제것을 되찾았다. 지금은 신전으로보다 프랑스 위인들의 무덤격인 판테온에서 푸코의 진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프랑스 과학자 레옹 푸코가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한 장치인 진자는 지금도 판테온 돔에서부터 내려온 67m의 긴 줄에 매달려 진동 중이었다. 역시 사람은 제가 아는 만큼 보는 모양이다. 녀석에겐 이곳에서 에밀 졸라나 빅토르 위고, 앙드레 말로보다 푸코의 진자가 우위였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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