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들 '펑펑' '팡팡' 피어나는 곳

입력 2013년04월0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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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베스트

 봄꽃 피는 순서를 아시는지. 


 시인 안도현은 ‘맨 처음 마당가에 / 매화가 / 혼자서 꽃을 피우더니 / 마을회관 앞에서 / 산수유나무가 / 노란 기침을 해댄다 / 그 다음에는 / 밭둑의 / 조팝나무가 / 튀밥처럼 하얀 / 꽃을 피우고 / 그 다음에는 / …….’(시 <순서> 중에서)라고 봄꽃 피는 순서를 노래했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하얀 매화꽃 휘날렸던 광양마을 대신 지금은 화개장터 - 쌍계사 십리 길에 벚꽃더미가 눈부시다. 지리산 자락 구례마을엔 떠나는 아쉬움을 달래며 산수유꽃이 노랗게 매달려 있다. 지나온 수많았던 그 봄날들처럼 올해도 ‘한번도 / 꽃 피는 순서 / 어긴 적 없이 / 펑펑, / 팡팡, / 봄꽃은 핀다.’ 



 이맘 때 절정인 벚꽃 나들이 코스로는 뭐니 뭐니 해도 경남 하동군 화개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십리벚꽃 길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으로도 손꼽히는 화개장터-쌍계사 십리벚꽃 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벚꽃 명소 중 하나다. 맑은 화개동천을 따라 절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은 말 그대로 벚꽃터널이다. 일찍이 김동리는 소설 <역마>에서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는 시오리가 좋은 길이라 해도 굽이굽이 벌어진 물과 돌과 장려한 풍경은 언제 보아도 길멀미를 내지 않게’ 한다고 묘사하였다. 그 길이 온통 벚꽃으로 뒤덮였으니 봄날의 그 장관을 어디에 비하랴. 하늘하늘 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구불구불 휘어지는 산길을 따라 가면 산비탈과 골짜기에 들어선 늙은 차나무숲이 운치를 더하고, 하얀 벚꽃송이와 어우러진 푸른 차밭이 그림 속 풍경인양 펼쳐진다. 



 그런 만큼 이 눈부신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는 꽃놀이 인파들로 이맘때 화개장터-쌍계사는 차들로 넘치고 사람들로 빼곡하다. 이런 번잡함이 싫다면 작은 절집의 호젓한 봄날 풍경을 찾아가 보자. 



 충남 서산시 운산면에 자리한 개심사의 봄날 풍경은 깊고 그윽하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결을 간직한 늙은 절집이 봄볕 속에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수많은 봄날이 그 앞을 오고 갔으리라. 한때는 흥겹게, 한때는 사무치게, 그리고 어느 때는 절박하게. 시나브로 내려앉는 먼지 같은 세월을 두텁게 두른 절집은 이제 더 이상 달뜰 것도 없는, 꽃 피고 지는 봄날도  무심히 바라보며 봄볕 속에 늙어가고 있다. 



 개심사의 이 해탈한 듯한 봄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을 연다’(開心)는 절집 이름처럼 절로 마음이 비워진다. 백제 의자왕 때(654년) 혜감이 창건한 이 절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갖췄지만 두드러진 특징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늙은 벚나무에 가려진 범종각의 나무 기둥도 그렇거니와 심검당과 그 옆에 붙여 지은 요사채 건물의 기둥도 본래 나무의, 굽고 휜 각각의 모양을 고스란히 살리고 있다. 자르고 다듬은 것이 아니라 휘고 굽은 제 모습 그대로도 얼마나 요긴하고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절집 건축물들이다. 절집에 붙은 ‘상왕산개심사’ 현판은 "해강 김규진" 선생의 글씨 또한 이런 절집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자유로운 서체다. 


 개심사의 봄꽃은 느지막이 피는 왕겹벚꽃이 하이라이트다. 앞 다투어 피던 연분홍 벚꽃들이 지고 나면 왕겹벚꽃은 천천히 꽃을 피운다. 겹겹의 꽃잎이 마치 세월을 친친 두른 절집을 닮았다. 요사채 앞마당에 선 벚나무는 붉디붉은 홍벚꽃을 피어올리고, 명부전 앞에 선 벚나무는 파르스름한 초록색이 비치는 청벚꽃을 피어올린다. 눈썰미 있는 상춘객이라면 소스라치게 감탄하며 발길을 멈추는 풍경이다. 
 
이준애(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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