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맞은 개미마을의 진짜 봄날

입력 2013년04월19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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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제동 개미마을


 하얗게 벙근 벚꽃이 바람에 날린다. 샛노란 개나리꽃이 낮은 포복으로 산기슭을 온통 점령한 동네는 노랫말 그대로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다. 여느 때 같으면 뒤엉킨 전깃줄이 먼저 앞을 가로막아서는 곳이지만, 화사한 봄꽃에 파묻힌 개미마을의 봄날은 그림 속 풍경인지, 풍경 속 그림인지 어리둥절해진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에 자리한 개미마을에는 개미가 살지 않는다. 개미처럼 부지런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 개미마을로 불린다. 특이한 이 이름 때문만이 아니라 개미마을은 여러 사연으로 인해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명소다.  

 그 여러 사연 중 첫 번째로 손꼽히는 것은 벽화마을로서의 명성일 게다. 경남 통영의 동피랑 마을과 함께 이 곳은 평일에도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벽화 촬영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지난 2009년 금호건설이 낙후된 지역을 아름다운 벽화거리로 바꾸는 "빛 그린 어울림 마을" 프로젝트를 펼치면서 개미마을은 벽화마을로 새로 태어나게 됐다. 당시 추계예술대학, 성균관대, 상명대, 한성대, 건국대 등 서울시내 5개 대학 미술전공 학생들이 재능기부를 해 지금의 벽화마을을 만들어냈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개미마을은 가난한 달동네로 취급받던 곳이다. 연말이면 기업이나 단체에서 ‘사랑의 연탄배달’이니 ‘불우이웃돕기’를 위해 찾아가는 곳으로 곧잘 뉴스 화면에 등장했다.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이 곳은 말 그대로 산동네이고, 6·25 때 갈 곳 없는 피난민들이 판자와 천막으로 집을 짓고 모여 살았던 빈촌이다. 그래서 한 때는 천막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해서  ‘인디언촌’이라 불리기도 했다. 


 지금도 이 곳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크게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개발이 비켜간 쇠락하고 퇴락한 집들이 마을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집들은 임시방편으로 덧붙이고, 곧추고, 세운 흔적이 역력한 몸으로 겨우겨우 버티고 선 모습들이다.
 
 ‘서울에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나’ 싶을 정도로 낙후됐지만 이제 개미마을은 더 이상 소외된 지역이 아니다. 허물어지는 담벼락에, 금이 간 벽면에, 가파른 골목 계단에 그려진 아름다운 벽화는 산비탈에 자리한 남루한 마을을 정겹고 아름다운 동네로 바꿔 놓았다. 멀리서도 이 곳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이 평일, 휴일 가리지 않고 이어진다. 


 최근에는 이 곳이 더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을 촬영한 곳으로 소문나면서부터다. 여섯 살 지능을 가진 아빠(류승룡)와 초등학생 딸 예승이가 살던 산동네가 바로 개미마을이다. 그래서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마을 입구부터 펼쳐지는 벽화를 보랴, 영화 속 장면을 찾으랴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러다 영화에서 예승이가 오지 않는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버스 정류장이 보이면 반가움에 탄성을 지른다. 예승이가 일터로 나가는 아빠의 신발끈을 매주던 가파른 언덕길도 눈썰미있게 찾아낸다.


 개미마을의 봄날이다. 봄날을 맞은 개미마을에 그리고 지금 진짜 봄날이 펼쳐지고 있다. 마을입구부터 벚나무가 피어올린 하얀 꽃송이를 시작으로 산비탈 언덕길에 갖가지 꽃들이 한창이다. 텃밭의 꽃나무와 담벼락에 그려진 꽃들이 어우러져 어느 것이 풍경이고, 어느 것이 그림인지 퍼뜩 구별이 가지 않는다.  


 ‘버드나무가게’라 간판을 단 구멍가게 옆에는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내뻗은 가지마다 초록 물빛이 차올랐다. 필경 이 버드나무 때문에 그 이름이 붙여졌을 구멍가게 벽면에는 붓꽃 한 송이가 탐스럽게 그려졌다.
 
 점점 가팔라지는 길을 따라 산비탈을 오르면 양쪽 집들 벽면마다 다양한 그림들이 이어진다. 방문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벽화로 꼽히는 강아지 두 마리 그림도 보인다.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마을버스가 회차하는 곳이자 인왕산 기차바위 능선으로 이어지는 개미마을 끝자락에 이른다. 


 늙은 벚나무가 바람에 꽃송이를 묵묵히 날리고 있는 이 산등성이에 서면 개미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올라올 때 보지 못한 누더기의 지붕들이 그제사 보인다. 비 새는 걸 막기 위해 얼기설기 덧댄 장판과 천막들이 낡은 지붕을 덮고 있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단지의 실루엣과 함께 벽화에 가려진 개미마을의 현실을 보는 듯해 마음 한쪽이 아릿해진다. 하지만 도처에 봄꽃이 만발하다. 개미마을은 지금 봄날이다.




이준애(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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