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편안한 슈퍼카, 벤츠 SL63 AMG

입력 2013년06월19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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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슈퍼 카(Super Car)"라 하면 엄청난 괴력에 특별한 사람(?)만이 제어하는 "무엇(?)"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제 아무리 고성능 차라도 서킷을 제외하곤 마음껏 밟아볼 수 있는 곳이 드물다. 독일 아우토반처럼 일부 속도 무제한 구간도 경험 가능한 것은 가속성일 뿐 코너링 성능은 아니다. 가속성과 코너링을 동시에 경험하려면 결국 서킷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벤츠 SL63 AMG는 서킷용이다. 하지만 개인 대상의 판매도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 도로에서 운행도 쉬워야 한다. 때로는 편안하게, 하지만 결코 슈퍼카 본연의 성격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게 핵심이다. 시승 내내 편안함과 흥분을 넘나들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디자인
 일반적으로 디자인을 얘기할 때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공기저항계수(coefficient of drag)"다.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는 구름 저항이지만 속도를 높일수록 동력 손실은 맞바람에 의해 커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저항을 최대한 줄이는 디자인은 효율과도 직결된다.

 저항 감소를 위해선 공기와 직접적으로 맞닿는 면적이 작아져야 한다. 그런데 SL63 AMG의 전면은 비교적 큰 편이다. 여기서 비교 대상은 최소 500마력 이상의 다른 고성능차를 의미한다. 페라리, 람보르니기, 포르쉐 등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끝 부분을 조각한 것 다르다는 얘기다. 그래서 지켜보고 있으면 묘한 감성을 자아낸다. 슈퍼카지만 부담이 없다. 2인승 로드스터여서 보닛은 길고 뒷부분은 짧은 전형적인 비율인데, 전면은 삼각별이 웅장하게 자리해 오히려 브랜드가 강조됐다.
 

 옆에서 보면 또 성격이 달라진다. SL만의 아름다움이 확연히 두드러진다. 전면 범퍼 아래에서 시작된 실루엣은 지붕을 거치며 유려하게 끝을 맺는다. 고성능이면서 어딘가 모르게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형태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언제나 노력하는 감성 지향점이기도 하지만 SL63 AMG는 더욱 그렇다. 뒷모습도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다. 죄측의 "SL63" 차명이 성격을 드러낸다면 우측의 "AMG"는 마침표와 같다. 더 이상 성능 언급이 필요 없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실내는 시각적으로 편안함이 많이 배려됐다. 고성능이라고 계기반의 지나친 화려함도 없다. 시속 320㎞까지 표시된 속도계가 은근한 잠재력을 보여줄 뿐이다. 센터페시어도 결코 튀지 않는다. 커맨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평범함이다. 하지만 왠지 모를 느낌이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어떻게든 "앉고 싶고, 달리고 싶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느껴진다.


 ▲성능 및 승차감
 그래서 앉았다. 시동키를 누르면 V8 터보 엔진의 우렁찬 소리가 머플러를 타고 흐르며 잠을 깨운다. 묵직함이 아니라 쇳소리처럼 맑고 높다. 흔히 쓰는 단어로 "카랑카랑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리가 곧 잦아들고 평온을 찾는다.

 변속레버를 "D"로 옮기고 가속페달에 힘을 주며 천천히 움직였다. "컴포트(C)" 모드에 에코(ECO)를 선택한 뒤 도심 주행에 나섰다. 페달 반응이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고, 주행 때도 편안하다. 전혀 고성능의 느낌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자동차 전용 도로에 올라선 후 느낌은 사뭇 다르다. 변속레버 옆에 위치한 드라이빙 모드 레버를 "스포트(S)"로 바꾸고, 페달을 깊게 밟았다. 순간 스피커에서 강렬한 비트가 나오듯 배기음이 파동치면서 앞으로 순식간에 달려 나간다. V8 5,461㏄ 터보 엔진에서 발휘되는 537마력과 81.6㎏.m(2,000-4,500)의 성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4.3초가 걸린다는 제원표 기록보다 느낌은 더욱 빠르다. AMG 7단 스피드시프트 멀티클러치는 쉼 없이 변속을 하며, 속도를 뒷받침한다. 1,855㎏에 불과한 차체는 지상에서 1,310㎜ 지점에 납작 엎드려 맞바람을 최소화 한다. 오로지 달리기에 집중한다.

 가속에선 저속, 중속, 고속을 가리지 않는다. 페달에 일정 답력 이상만 전달되면 여지없이 힘찬 배기음을 내며 말 그대로 전력 질주한다. 동시에 고속에서 제동페달을 밟으면 짧은 시간에 속도를 크게 줄인다. 그런데 제동할 때 인상적인 점이 하나 있다. 제 아무리 고성능이라도 급제동 때는 물리적 관성에 따라 몸이 앞으로 쏠리고, 어떻게든 서기 위해 차체가 조금씩 떨리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SL63 AMG는 제동이 상당히 부드럽다. 동시에 짧은 순간 속도가 줄어든다. 그 어느 도로에서도 편안함과 주행의 흥분을 동시에 느끼게 하겠다는 제조사의 철학을 체감한 대목이다. 


 이런 저런 버튼을 누르기 귀찮다면 "AMG"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 드라이빙은 스포트를 넘어 서킷에 최적화 된 "스포트 플러스(S+)"로 변하고, 변속은 패들로 조작하면 된다. 저단과 고단을 오가는 변속이 빨라 도로가 레이싱 트랙으로 착각될 정도다.

 코너링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전자제어여서 스포트 모드로 전환되면 감쇠력이 강해지고, 컴포트로 바뀌면 또 다시 편안하다. 컴포트 모드에서 비교적 굴곡이 깊은 곳을 돌아 나가도 노면을 제대로 움켜쥔다. 구동력이 전달되는 뒷바퀴에 장착된 "285/30R 20" 규격의 타이어도 한 몫 한다.


 동승석에 재미있는 기능이 있다. 통상 운전자는 버킷 타입 시트에 몸을 맡기고, 스티어링 휠을 손으로 잡아 몸의 쏠림을 지지한다. 반면 동승석은 달리 몸을 지탱할 보조도구가 없다. 그래서 시트 버킷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왼쪽으로 회전하면 원심력이 우측으로 발생하는 만큼 동승석 우측 버킷이 왼쪽으로 몸을 감싸준다. 동승자가 느끼는 코너링의 쏠림을 억제한 기능이다. 슈퍼카라면 오로지 스티어링 휠을 잡은 사람만을 위한 것으로 여겨왔던 생각을 바꾸겠다는 의도다. 동승자도 고성능 즐거움을 체감하도록 만들겠다는 의도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주행하다 잠시 멈춰선 뒤 루프를 개방했다. 짧은 시간에 열린다. 이어 오디오 볼륨을 높이고, 음향을 체감했다. 통상 지붕이 개방되는 로드스터는 오디오의 성능이 꽤 중요하기 때문이다.
뱅앤울릅슨 오디오 시스템은 명료한 음질을 제공한다. 속도를 높여도 깨끗하게 들린다. 지붕이 개방돼도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설계했다는 제조사의 설명에 수긍이 간다. 대시보드 좌우 끝에 위치한 트위터 스피커의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IWC 아날로그 시계는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총평
 메르세데스 벤츠 SL63 AMG는 2억원이 조금 넘는다. "AMG" 명찰 값이다. 하지만 이름표에 토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만큼 고성능 선호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왔다는 의미다. 또한 일반도로 주행의 편안함도 버리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날 마다 스포츠카"에 가깝되 "작심하면 슈퍼카"로 변신한다.

 ℓ당 7.8㎞의 복합효율은 5등급이지만 고속 모드에선 9.7㎞까지 오른다. 물론 도심에선 ℓ당 6.7㎞로 떨어지지만 편안 모드로 주행하면 비교적 효율 부담이 적다. SL63 AMG를 타면서 효율에 비중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배기량 등을 감안할 때 나쁘지 않은 편이다.

 사실 SL63 AMG는 벤츠만이 가진 고유의 슈퍼 스포츠카 철학을 보여주는 차다. 무조건 달리기보다 "필요할 때 달리는 차", 그러면서도 "편안함과 최고급의 감동을 줄 수 있는 차"가 바로 SL63 AMG다. 오로지 전력 질주만을 위해 태어난 또 다른 슈퍼 스포츠카와 구분되는 가장 특징이자 강점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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