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EU 내연기관 유지? ‘생존 시간’ 부여일 뿐

입력 2025년12월22일 11시15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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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출규제 완화일 뿐, 탄소 감축은 강력 추진 

 

 유럽연합이 2035년 내연기관 탑재 차종의 판매 금지를 철회했다는 소식이 화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일정 기간 생존 시간을 부여했을 뿐 화석연료 기반의 내연기관 규제는 여전히 강력하다.

 



 

 EU 집행위원회는 2035년 신차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당초 100%로 설정했다. 하지만 독일을 중심으로 한 자동차업계의 반발에 밀려 100%를 90%로 완화키로 했다. 동시에 2030년부터 2032년까지 승용차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1년 대비 55% 감축하되 3년의 유예 기간을 부여한다. 아울러 버스 등의 승합차는 2030년 감축 목표를 기존 50%에서 40%로 낮추는데 합의했다. 이를 두고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한 방침을 사실상 철회했다는 소식이 쏟아진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화석연료 기반 내연기관의 설 자리는 여전히 비좁다. 완화된 기준에서도 내연기관을 사용하려면 화석연료 사용량을 크게 줄여야 하는 탓이다. PHEV와 EREV 등을 허용했지만 이들 차종의 효율을 크게 높이지 못하면 기준을 충족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규제를 맞추려면 EU 내 생산된 저탄소 철강을 써야 하고, 화석연료 대신 이퓨얼(합성연료) 또는 바이오 연료 등을 사용해 남은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한 마디로 화석연료 내연기관 판매 시기는 연장했지만 실질적인 감축은 다른 부문에서 일으키라는 요구다. 

 

 유럽 신차 판매의 약 60%를 차지하는 법인차의 전기차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계획도 수립했다. 물론 2030년과 2035년 국가별 목표는 1인당 GDP에 따라 설정하기로 했다. 또한 유럽 내에서 생산된 소형 전기차는 별도 규제 카테고리를 신설하되 완화된 규칙을 적용하고 탄소 배출 목표 달성에 유리한 조건을 추가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흥미로운 점은 EU의 정책을 바라보는 국내 시각이다. EU의 내연기관 판매 금지 시점이 뒤로 밀린 점을 주목하며 한국이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 쏟아진다. 그만큼 BEV 대신 HEV 또는 PHEV, EREV 등이 늘어날 수 있어서다. 그럴수록 중국이 집중 공략 중인 유럽 내 BEV의 성장세가 꺾일 것이란 기대감을 갖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아전인수 해석이다. 내연기관이 연장되면 그만큼 유럽 내 완성차기업의 시장 공세도 거세지고 현지에 공장을 갖춘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빠른 전동화를 선택한 한국차 입장에선 EU의 BEV 전환이 빠를수록 선점 효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BEV를 비롯해 FCV, HEV, PHEV 그리고 EREV 파워트레인까지 갖춘 한국차로선 EU 내 제조사가 아직 다양한 라인업을 완성하지 못한 상황을 공략해야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다는 얘기다.

 

 사실 BEV 분야에서 중국차와 경쟁은 이미 예견된 상황이다. 세계 곳곳에서 중국 BEV의 진출이 봇물을 이루고 EU 또한 내연기관 금지 시점 지연은 중국 BEV의 공세를 EU 내연기관으로 맞대응한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중장기 관점에서 볼 때 중국 BEV의 거센 공격을 생산비용이 비싼 EU가 막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EU의 내연기관 금지 시점 연장은 한국에 결코 긍정적인 신호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EU 시장에서 한국이 BEV 분야를 선도하고 중국이 그 뒤를 추격하는 구도가 형성되는 편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더 바람직할 수 있다. HEV와 PHEV 시장은 이미 경쟁이 매우 치열하며, 향후 추가될 EREV 역시 기존 내연기관 기업들에게 기술적으로 큰 장벽이 되는 영역은 아니다. 결국 BEV 분야에서 기술적 격차를 벌리는 전략이 보다 효과적인 선택이라는 의미다.

 

 박재용(공학박사, 자동차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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