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토요타는 되고, 혼다는 안된 이유

입력 2026년05월14일 08시30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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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시장에서 갈린 두 일본차의 운명
 -혼다, 차는 좋았지만 '왜'는 흐려져
 -토요타, '선택 이유' 만들었다

 
 일본차의 시대가 있었다. 

 


 

 '강남 쏘나타'의 원조는 렉서스 ES였다. 인피니티에게 한국은 세계 1~2위 규모를 다투는 '핵심 시장'이었고 혼다는 20여년 전 처음으로 1만대 판매를 넘어섰다. 

 

 그 시절 일본차를 선택하던 이유는 분명했다. 독일차가 성공의 상징이었다면 일본차는 현실적인 프리미엄이었다. 잔고장 적고, 기름 덜 먹고, 오래 탈 수 있는 차. 특히 혼다는 그 중심에 있었다. 어코드와 CR-V는 '국산차보다 한 단계 좋은 차'라는 이미지를 만들었고 지금도 당시 판매된 차들이 도로 위를 멀쩡히 달리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혼다는 결국 우리나라에서의 자동차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반면 토요타와 렉서스는 여전히 견고하다. 둘 다 일본 브랜드고 둘 다 내구성과 신뢰성 만큼은 최고이며 둘 다 하이브리드를 갖고 있다. 그런데 왜 결과는 이렇게 달라졌을까.

 


 

 단순히 불매운동 때문이라고 말하면 절반만 보는 이야기다. 본질은 훨씬 깊다.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 토요타는 브랜드를 ‘이유 있는 선택지’로 만들었고 혼다는 끝내 좋은 차 회사에 머물렀다.

 

 사실 혼다의 기술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기술의 혼다'라는 별명처럼 일본 브랜드 중에서도 가장 엔지니어 중심적인 회사에 가까웠다. 고회전 자연흡기 엔진과 VTEC으로 상징되는 엔진 기술, 모터사이클에서 쌓아온 기계 완성도,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내놨던 EV 플러스와 아시모 같은 선행기술까지. 기술만 놓고 보면 혼다는 늘 시대를 앞서 있었다. 

 

 문제는 그 기술을 소비자가 '왜 혼다를 사야 하는가'로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면 토요타는 달랐다. 토요타는 단순히 하이브리드를 판 게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소비자에게 '하이브리드는 토요타'라는 인식을 심었다. 대표적인 게 프리우스와 렉서스 ES300h다. 프리우스는 국내에서 하이브리드라는 개념 자체를 처음 각인시킨 차에 가까웠고 ES300h는 조용하고 편안하면서 효율 좋은 시장을 사실상 개척해냈다.

 


 

 혼다에도 하이브리드는 있었다.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기술적으로도 훌륭했다. 하지만 소비자 머릿속에 '하이브리드=혼다'라는 연결은 끝내 만들지 못했다. 기술은 있었지만 시장의 언어로 번역하지 못한 셈이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건 토요타가 단순히 하이브리드만 밀어붙인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토요타의 진짜 강점은 하이브리드로 확보한 안정적인 판매량과 수익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딴 짓’을 해왔다는 데 있다.

 

 지금이야 국산 브랜드들도 대형 SUV와 미니밴에 하이브리드를 내놓고 있지만 토요타는 한국 시장에서 하이랜더와 시에나 같은 차로 가능성을 먼저 시험했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선보인 알파드는 굉장히 상징적인 차다. 당시만 해도 '1억짜리 미니밴'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상자를 열어보니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스포츠카도 마찬가지다. 요즘 대중 브랜드에서 스포츠카를 유지하는 건 수익성만 보면 비효율에 가깝다. 판매량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토요타는 한국에 GR 수프라를 출시했고 GR86을 수동변속기 버전으로만 판매하고 있으며 모터스포츠라는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알려나가고있다.

 

 자동차 업체 경영자의 입장에서라면 '왜 저런 돈 안되는 차를 아직도 만들지?' 싶은 영역이다. 그런데 바로 그 ‘쓸데없어 보이는 선택’이 브랜드를 특별하게 만든다.

 

 소비자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단순히 효율 좋은 차만 판다고 브랜드를 좋아하지 않는다. 브랜드 안에 어떤 철학과 취향, 그리고 감성이 있는지를 본다. 토요타는 프리우스와 캠리 하이브리드, ES300h 같은 차로 안정적인 볼륨을 유지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GR수프라와 GR86 같은 스포츠카를 만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알파드 같은 고급 미니밴을 들여왔다.

 


 

 그렇게 우리나라 소비자 입장에서 토요타는 점점 '국산차와 다른 선택지'가 됐다. 단순히 수입차라서가 아니다. 국산 브랜드가 아직 하지 않던 영역, 혹은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영역을 먼저 보여줬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오래 탈 하이브리드 세단을 원하면 ES300h가 있었고, 고급스럽고 편안한 이동 경험을 원하면 알파드가 있었으며, 순수 내연기관 스포츠카 감성을 원하면 수프라와 GR86이 있었다. 불매 여론이나 정치적 변수와 별개로, 소비자가 '그래도 이 차는 토요타라서 산다'라고 말할 이유를 계속 만들어준 셈이다.

 

 반면 혼다는 점점 선택 이유가 흐려졌다. 차는 여전히 좋았다. 내구성과 기본기는 훌륭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혼다라서 꼭 사야 하는 이유'가 점점 약해졌다. 하이브리드는 토요타가 더 강했고 스포츠 감성은 독일 브랜드가 더 강했으며 상품성과 디지털 경험은 현대차·기아가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토요타는 느리지만 방향을 잃지 않았다. 하이브리드를 오래 밀면서도 전기차와 스포츠카, SUV와 미니밴까지 브랜드의 폭을 넓혔다. 반면 혼다는 결국 '왜 혼다여야 하는가'를 시장 안에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미쓰비시와 스바루, 닛산과 인피니티에 이어 혼다까지. 일본 브랜드들이 하나둘씩 한국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는 모습은 자동차 팬 입장에서 분명 아쉬운 일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엔지니어링과 브랜드 감성, 그리고 일본차 특유의 철학도 함께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혼다만큼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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