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대신 작업자가 만드는 트럭..한 공정에 최대 10명 투입
-수십 가지 조합 대응하는 다품종 생산..디젤·전기차 한 라인서
-수작업 공장의 반전..'조립부터 시동까지 8시간'
"로봇은 아직 안 보이시죠?"
지난 17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 위치한 만트럭 공장. 생산라인을 안내하던 관계자가 던진 말에 주변을 다시 돌아봤다. 정말로 그랬다. 최근에 방문했던 자동차 공장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용접 불꽃 사이로 거대한 로봇팔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작업자들이 차체 아래로 들어가 볼트를 조이고 망치를 두드렸다. 한 공정에 여러 명이 달라붙어 작업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작업량에 따라 한 스테이션에서 2명부터 많게는 10명까지 함께 일한다. 일이 몰리는 곳을 찾아 지원하는 이른바 '조커' 역할의 작업자도 따로 배치한다.
공장만 놓고 보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온 듯한 풍경이다. 실제 이곳의 역사는 오래됐다. 과거 BMW가 항공기 엔진을 생산했던 시설을 만이 1950년대 인수했고 1955년부터 트럭 조립을 시작했다. 지금도 당시부터 이어져 온 생산시설을 지속적으로 현대화하며 사용하고 있다. 현재 섀시 조립 부문은 2교대로 운영하며 700명이 근무한다. 전체 생산라인의 인원은 약 3,500명에 달한다.
이곳이 사람의 손을 고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트럭은 승용차와 생산 방식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승용차는 하나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차체와 파워트레인의 조합을 일정 범위 안에서 표준화할 수 있다. 반면 상용차는 구매자의 사업과 운송 목적에 따라 사양이 크게 달라진다. 장거리 운송용 트랙터와 건설현장을 오가는 덤프트럭부터 특수목적차까지 요구 조건이 제각각이다.
섀시의 축 구성과 길이는 물론 서스펜션, 구동축, 연료탱크, 배출가스 후처리 장치 등도 용도와 판매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라인을 지나가는 트럭이라고 해도 사실상 서로 다른 차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실제 생산라인에서는 유럽형 트럭뿐 아니라 중동과 아프리카 등 서로 다른 배출가스 규제를 적용받는 차들이 함께 만들어지고 있었다. 요소수 탱크 하나만 해도 엔진과 트럭의 용도에 따라 용량이 달라진다. 건설현장용과 장거리 운송용 트랙터가 요구하는 구성 품목도 다르다.
전동화가 시작되면서 경우의 수는 더 늘었다. 현재 뮌헨공장은 디젤트럭과 전기트럭을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혼류 생산한다. 만 측은 전기트럭 역시 기본적인 조립 구조를 기존 디젤트럭과 최대한 비슷하게 설계해 혼류 생산이 가능하도록 했다. 차에 따라 배터리 개수도 3개부터 7개까지 달라진다. 규격화된 하나의 제품을 빠르게 반복 생산하는 로봇에게는 오히려 까다로운 환경이다. 사람의 판단과 유연성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생산라인을 따라 걷다 보니 이런 특징은 더욱 선명해졌다. 작업자는 모니터에 표시되는 지시에 따라 각 트럭에 맞는 부품을 조립했다. 작업 상태와 필요한 볼트도 색상으로 구분했다. 일부 작업자는 와이파이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제어장치를 허리에 차고 크레인을 직접 움직였다. 850㎏에 달하는 구동축과 수백㎏의 부품은 크레인과 리프터를 활용해 정확한 위치에 가져다 놓고 사람이 최종 조립했다.
공구도 작업 내용에 맞춰 디지털화했다. 어떤 공구를 사용해야 하는지 시스템이 알려주고 작업 결과까지 기록한다. 생산라인이 다음 공정으로 움직였는데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면 작업자가 차를 따라 걸으며 남은 작업을 마무리하는 모습도 보였다.
로봇은 일부 제한적인 공정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 운전석을 섀시와 결합하는 과정에 앞서 접착 작업을 하거나 앞유리를 다루는 정도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운전석을 섀시에 올리는 '메리지' 공정에는 다시 사람이 등장한다. 한 명이 크레인을 조작하고 두 명이 운전석을 장착한 뒤 섀시와 운전석 사이 케이블을 연결한다.
흥미로운 건 생산속도다. 공장 관계자는 다른 공장보다 로봇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빔 세트부터 처음 엔진을 가동하기까지 한 교대, 즉 8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자동화율 대신 공정과 물류의 최적화로 생산성을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뮌헨공장에서 더욱 눈길을 끈 건 생산라인보다 그 뒤에서 움직이는 물류였다. 공장 입구에는 이른바 '슈퍼마켓'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자동차 산업에서 익숙한 '간반 방식'과 비슷하다. 각 생산차의 구성에 맞춰 필요한 부품을 미리 준비하고 스캔을 통해 확인한다. 하나의 카트에는 특정 생산구간에서 필요한 부품을 담고, 이를 다 사용하면 다음 물류구간으로 넘기는 방식이다. 카트는 무인 운송장치와 연결돼 생산라인을 따라 이동한다.
핵심은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필요한 순간에' 가져오는 것. 이른바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이다. 공장 인근 다하우의 물류창고에는 배터리와 휠, 탱크 등 부피가 큰 부품을 보관한다. 이곳에서 하루 생산계획과 실제 조립순서에 맞춰 부품을 배열한 뒤 뮌헨 공장으로 보낸다. 휠 세트조차 1번부터 24번까지 생산순서에 맞춰 번호를 붙이고 트레일러에 3개 층으로 적재한다.
생산현장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사전 조립한 부품은 생산순서에 맞춰 공급하고 대형 부품은 지게차와 크레인을 통해 해당 섀시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전달한다. 공장 관계자가 "물류 차원에서 전체 생산을 계획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복잡하지만, 이를 정교하게 통제하는 것이 뮌헨공장의 생산성을 결정한다.
만 뮌헨 공장에서 효율화는 사람을 로봇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그대로 두되 사람이 기다리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부품을 찾으러 움직이는 시간을 줄이고, 무거운 물건은 크레인과 운송장치가 옮기며, 작업자는 화면을 통해 지금 해야 할 일을 즉시 확인한다.
생산라인 끝에서는 완성된 트럭에 처음으로 시동을 건다. 앞서 여러 단계의 품질검사를 통과해야만 가능한 절차다. 이후 테스트벤치에서 최고 시속 90~100㎞ 수준으로 구동하며 속도와 브레이크, 조명, 구동력 등을 확인하고 레이저 장비로 휠 얼라인먼트까지 검사한다. 모든 과정을 통과한 트럭만 스스로 생산라인을 빠져나간다.
공장을 모두 둘러보고 나니 처음의 인상도 달라졌다. 분명 만 뮌헨공장은 최신 자동차 공장에서 흔히 기대하는 모습과 거리가 있다. 망치 소리가 들리고 작업자가 직접 크레인을 움직인다. 한 작업에 여러 사람이 달라붙고 생산라인 곳곳에서는 숙련된 작업자의 손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낡은 공장은 아니었다. 자동화하기 어려운 트럭이라는 제품의 특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효율을 찾았다. 로봇으로 사람을 밀어내는 대신 부품의 이동과 작업순서, 공구와 정보의 흐름을 정교하게 통제했다. 디젤과 전기트럭까지 하나의 라인에서 생산하면서도 섀시 조립부터 첫 시동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8시간이다.
이렇다 보니 작업자의 숙련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뮌헨 공장에는 3대째 만에서 일하는 가족까지 있을 정도. 70년 넘게 트럭을 만들어온 오래된 생산라인이 전동화 시대에도 여전히 움직일 수 있는 비결은 어쩌면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래된 공장이 살아남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사람이 필요한 곳에는 사람을 남기고,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기계에 맡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낭비를 최대한 걷어낸다. 자동화 그 자체가 아니라, 효율에 답이 있었다.
뮌헨(독일)=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