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환경에 뇌 각성 수준 떨어져
-오후 2~4시·새벽 시간대 생체리듬도 영향
-졸음 참는 것보다 휴게소·쉼터에서 쉬어야
분명 잠을 충분히 잤는데 이상하게 운전대만 잡으면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특히 끝없이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하품이 나오고 눈이 뻑뻑해진다. 방금 지나온 표지판의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는 순간도 찾아온다. 도대체 운전 중에는 왜 졸린 걸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원인은 당연히 수면 부족이다. 그러나 운전 중 졸음은 단순히 전날 얼마나 잤느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의 생체리듬과 운전 환경, 반복되는 자극, 식사와 차량 내부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고속도로 운전은 역설적이다. 시속 100㎞ 안팎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지만 운전자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오히려 단조롭다. 직선에 가까운 도로가 이어지고 일정한 속도로 앞차를 따라간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조작하는 횟수도 도심보다 적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로 유지 보조 기능을 사용한다면 운전자가 직접 해야 할 조작은 더욱 줄어든다.
문제는 사람의 뇌가 반복적인 자극에 익숙해진다는 점이다. 새로운 정보와 돌발 상황이 적으면 긴장감과 각성 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 몸은 운전석에 앉아 있지만 뇌가 처리해야 할 정보가 반복되면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장시간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목적지를 향해 정상적으로 운전했음에도 방금 지나온 수㎞의 과정이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흔히 '고속도로 최면'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실제 최면에 걸린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단조로운 주행환경에서 주의력이 저하되고 운전 과정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는 상태에 가깝다.
시간대도 중요하다. 사람의 각성 수준은 하루 종일 일정하지 않다. 특히 새벽 시간대에는 생체리듬상 졸음이 강해진다. 오후에도 한 차례 각성 수준이 떨어지는 구간이 나타난다. 점심을 먹지 않았더라도 오후에 졸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식사까지 더해지면 졸음은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흔히 '소화하느라 피가 위장으로 몰려 뇌에 피가 부족해져 졸린다'고 생각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이다. 식후 졸음에는 생체리듬과 식사량, 음식 구성에 따른 대사 변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특히 이미 수면이 부족한 상태라면 식후 찾아오는 졸음과 생체리듬상의 각성 저하가 겹칠 수 있다.
장시간 창문을 닫고 주행하는 차량 내부 환경도 변수다. 여러 사람이 탑승한 채 오랫동안 외부 공기 유입이 부족하면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갈 수 있다.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와 좋지 않은 환기 상태는 답답함이나 집중력 저하와 연관될 수 있다.
그렇다고 졸음운전의 원인을 단순히 '차 안의 산소 부족'으로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정상적인 자동차 실내에서 산소가 갑자기 위험할 정도로 부족해지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주기적으로 환기하고 공조장치의 외기 유입 기능을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 역시 잠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졸음운전의 위험은 단순히 눈을 완전히 감고 잠드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졸음이 찾아오면 운전자의 반응속도와 판단력, 주변 상황을 인지하는 능력이 먼저 떨어질 수 있다. 차로 중앙을 일정하게 유지하지 못하거나 앞차와의 거리가 급격하게 좁아진 뒤 뒤늦게 브레이크를 밟는 식이다.
더 위험한 것은 '마이크로슬립'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과 몇 초 동안 잠에 빠지는 현상이다. 시속 100㎞로 달리는 차는 1초에 약 27.8m를 이동한다. 단 3초 동안 운전자가 제대로 전방을 보지 못했다면 차는 약 83m를 이동한다. 5초면 약 139m다. 사실상 눈을 감고 축구장 길이에 가까운 거리를 달리는 셈이다.
운전자 스스로 졸음이 얼마나 심해졌는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하품이 반복되고 눈꺼풀이 무거워지거나 차선을 밟기 시작했다면 이미 집중력이 상당히 저하됐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졸음이 찾아오면 흔히 창문을 열거나 음악을 크게 틀고 껌을 씹는다. 동승자와 대화를 나누거나 찬바람을 얼굴에 쐬기도 한다. 일시적으로 정신이 드는 느낌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부족한 수면 자체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카페인 역시 마찬가지다. 일정 시간 각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잠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이미 눈이 감길 정도로 졸린 상황에서 커피 한 잔만 믿고 계속 운전하는 것은 위험하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차를 안전한 장소에 세우고 쉬는 것이다. 고속도로라면 휴게소나 졸음쉼터를 이용해야 한다. 짧게라도 수면을 취한 뒤 다시 출발하는 편이 졸음을 억지로 참으며 목적지까지 버티는 것보다 안전하다.
졸음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뇌가 휴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운전자는 흔히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목적지까지 30분, 다음 휴게소까지 20㎞라는 이유로 졸음을 참는다. 그러나 시속 100㎞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불과 몇 초의 마이크로슬립은 수십에서 100m 이상의 무인 주행과 다르지 않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순간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정신력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안전한 장소에 차를 세우는 판단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